녹색사회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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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사회민주당 | |
한자 명칭 | 綠色社會民主黨 |
약칭 | 녹색사민당/사민당 |
창당일 | |
해산일 | |
통합한 정당 | |
이념 | |
정치적 스펙트럼 | |
해산 전 대표 | |
당 색 | 연두색 (#51B749)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장기표 전 한국사회민주당 대표를 대표최고위원으로, 박창화·정해훈 전 녹색평화당 공동대표와 박영호 한신대 대학원장, 강성천 한국노총 자동차노련 위원장, 이병균 한국노총 금속노련위원장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조직과 서울 동작갑(장기표)과 울산 울주(신진규), 경기도 이천(김만재), 안산(임이자[1]) 등 지역구 5곳과 비례대표 5석을 합쳐 총 10석 획득을 목표로 2만당원을 모았다. 기사
28명의 지역구 후보를 내고 실질적으로 지역구 1석 획득과 정당비례명부 3%가 목표였으나, 정당비례명부 0.5% 득표율로 당시 선거법과 정당법에 따라 득표수 미달로 해산되었다.[2] 기사
이름만 사민주의스러울 뿐, 정강정책에 '이대로 성장률이 떨어진다면, 우리나라는 남미(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처럼 될 것이다.'라고 명시할 정도로 보수정당과 별다를 바 없는 정당이었다.
이후 생태주의, 신좌파계열은 녹색당을 창당하고, 사회민주당계열은 복지국가당과 합쳐서 사회민주당을 실질적으로 재창당하게 된다. 당 창당의 주역인 장기표는 이후 8년간 잠수를 타다가 국민생각을 거쳐서 정통민주당[3]으로 가버렸고, 거기서도 또 낙선하였다가 이후 미래통합당 창당에 합류하였다. 강성천 최고위원은 2008년에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비례대표로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4] 임이자 후보는 2016년에 새누리당에 입당해서 비례대표로 환경노동위원회로 들어가게 되었다.
28명의 지역구 후보를 내고 실질적으로 지역구 1석 획득과 정당비례명부 3%가 목표였으나, 정당비례명부 0.5% 득표율로 당시 선거법과 정당법에 따라 득표수 미달로 해산되었다.[2] 기사
이름만 사민주의스러울 뿐, 정강정책에 '이대로 성장률이 떨어진다면, 우리나라는 남미(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처럼 될 것이다.'라고 명시할 정도로 보수정당과 별다를 바 없는 정당이었다.
이후 생태주의, 신좌파계열은 녹색당을 창당하고, 사회민주당계열은 복지국가당과 합쳐서 사회민주당을 실질적으로 재창당하게 된다. 당 창당의 주역인 장기표는 이후 8년간 잠수를 타다가 국민생각을 거쳐서 정통민주당[3]으로 가버렸고, 거기서도 또 낙선하였다가 이후 미래통합당 창당에 합류하였다. 강성천 최고위원은 2008년에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비례대표로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4] 임이자 후보는 2016년에 새누리당에 입당해서 비례대표로 환경노동위원회로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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