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륜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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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진흥왕이 신라의 영토를 확장해 포석을 닦아두고 장남으로서 태자에 책봉되어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지만 아버지보다 먼저 요절해버렸다. 이 때 진흥왕은 아직 겨우 30대 후반이었는데, 말년에 불교에 심취해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것이나 진흥왕 본인도 몇년 못 가 요절한 것도 태자를 너무 빨리 보낸 충격 탓일지도 모른다.
고모 만호부인과의 사이에서 이미 김백정, 김백반, 김국반 세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려서인지 결국 진흥왕의 차남 사륜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진지왕이다. 하지만 색만 밝히고 방탕하게 횡음했기에 5년만에 폐위당하고, 결국 어린 자신의 아들 김백정이 진평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왕위가 잠시 동생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온 셈.
위서인 《필사본 화랑세기》에만 있는 내용으로는 위 사망 과정에 좀 더 내용이 있는데,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와 눈이 맞아 몰래 보명궁을 들락거렸는데 담을 넘는 중 그만 개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 얼마 뒤 죽었다고 한다.
고모 만호부인과의 사이에서 이미 김백정, 김백반, 김국반 세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려서인지 결국 진흥왕의 차남 사륜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진지왕이다. 하지만 색만 밝히고 방탕하게 횡음했기에 5년만에 폐위당하고, 결국 어린 자신의 아들 김백정이 진평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왕위가 잠시 동생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온 셈.
위서인 《필사본 화랑세기》에만 있는 내용으로는 위 사망 과정에 좀 더 내용이 있는데,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와 눈이 맞아 몰래 보명궁을 들락거렸는데 담을 넘는 중 그만 개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 얼마 뒤 죽었다고 한다.
3. 같이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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