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include(틀:삼성 라이온즈/간략(코칭스태프))] |
|---|
| 2 | ---- |
|---|
| 3 |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fff 김재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
| 4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
| 5 | ---- |
|---|
| 6 | ||<-3><tablealign=center>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 |
|---|
| 7 | ||<bgcolor=#074ca1> '''[[2002년 한국시리즈|{{{#ffffff 2002}}}]]''' ||<bgcolor=#074ca1> '''[[2005년 한국시리즈|{{{#ffffff 2005}}}]]''' ||<bgcolor=#074ca1> '''[[2006년 한국시리즈|{{{#ffffff 2006}}}]]''' || |
|---|
| 8 | ---- |
|---|
| 9 | ||<-4><tablealign=center>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 |
|---|
| 10 | ||<bgcolor=#074ca1> '''[[2011년 한국시리즈|{{{#ffffff 2011}}}]]''' ||<bgcolor=#074ca1> '''[[2012년 한국시리즈|{{{#ffffff 2012}}}]]''' ||<bgcolor=#074ca1> '''[[2013년 한국시리즈|{{{#ffffff 2013}}}]]''' ||<bgcolor=#074ca1> '''[[2014년 한국시리즈|{{{#ffffff 2014}}}]]''' || |
|---|
| 11 | ---- |
|---|
| 12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9번}}}''' || |
|---|
| 13 | || 윤용하(1991~1993) || → || '''김재걸(1995)''' || → || [[이중화]](1996) || |
|---|
| 14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7번}}}''' || |
|---|
| 15 | || [[이정훈(1963)|이정훈]](1995) || → || '''김재걸(1996~1998)''' || → || 결번 || |
|---|
| 16 | || 결번 || → || '''김재걸(2001~2004)''' || → || [[박진만]](2005~2010) || |
|---|
| 17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6번}}}''' || |
|---|
| 18 | || [[고지행]](2004) || → || '''김재걸(2005~2009)''' || → || [[손주인]](2010~2012) || |
|---|
| 19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73번}}}''' || |
|---|
| 20 | || 나가시마 키요유키(2009) || → || '''김재걸(2010~2018)''' || → || 윤성철(2020~) || |
|---|
| 21 | ||<-5><bgcolor=#c30451> '''[[LG 트윈스|{{{#fff LG 트윈스}}}]] {{{#fff 등번호 72번}}}''' || |
|---|
| 22 | || [[손인호]](2018) || → || '''김재걸(2019~2020)''' || → || 결번 || |
|---|
| 23 | }}} || |
|---|
| 24 | ---- |
|---|
| 1 | 25 | |
|---|
| 26 | ||<-2><table bordercolor=#074ca1><table width=600><tablealign=center> {{{#!wiki style="margin: -5px -10px" |
|---|
| 27 | [[파일:/image/112/2015/02/22/201502221030292184491_20150222105101_01_99_20150222121602.jpg|width=100%]]}}} || |
|---|
| 28 | ||<-2><bgcolor=#074ca1> '''{{{#ffffff 삼성 라이온즈 No.73}}}''' || |
|---|
| 29 | ||<-2><colbgcolor=#c0c0c0,#3f3f3f><colcolor=#074ca1> '''{{{+2 김재걸}}} [br] 金在杰 / Kim Jea-Gul''' || |
|---|
| 30 | || '''생년월일''' || [[1972년]] [[9월 7일]] ([age(1972-09-07)]세) || |
|---|
| 31 | || '''출신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 |
|---|
| 32 | || '''학력''' || 영일초-[[우신중학교|우신중]]-[[덕수고등학교 야구부|덕수상고]]-[[단국대]] || |
|---|
| 33 | || '''포지션''' || 내야 유틸리티([[2루수]], [[3루수]], [[유격수]]) || |
|---|
| 34 | || '''투타''' || [[우투우타]] || |
|---|
| 35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5년/신인드래프트|1995년 2차 2라운드 지명(전체 14번, 삼성)]] || |
|---|
| 36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5~2009)''' || |
|---|
| 37 | || '''응원가''' || [[자우림]] - 하하하송[* 랄랄랄랄 라랄라~ 날려라~ 김재걸~ 랄랄랄랄 라랄라~ 날려라~ 김재걸~ 안타! 안타! 안타!][* 은퇴 후 손주인이 물려받았다.] || |
|---|
| 38 | || '''지도자''' || [[삼성 라이온즈]] 1군 트레이닝 코치 (2010) [br] [[삼성 라이온즈]] 1군 작전코치[* 3루 코치] (2011~2018) [br] 삼성 라이온즈 2군 작전코치 (2018) [br] [[LG 트윈스]] 1군 작전코치[* 3루 코치] (2019~2020) [br] [[삼성 라이온즈]] 2군 내야 수비코치 (2021~) || |
|---|
| 39 | |
|---|
| 40 | [목차] |
|---|
| 41 | |
|---|
| 42 | == 소개 == |
|---|
| 43 |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였으며 현재는 코치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LG 트윈스]]의 코치. 등번호는 데뷔시절엔 9번, 1996년부터 2004년까지 7번, 2005년부터 2009년까지 6번이며 2010년부터 코치로는 73번을 달았다. LG 트윈스의 코치시절엔 72번이였다. |
|---|
| 44 | |
|---|
| 45 | 현역 시절 [[전상렬]]과 마찬가지로 야구계의 [[노안]]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안승민|그분]]에 비하면 상대도 안된다.~~ 여담이지만 삼성의 3김([[김한수]]-[[김종훈(1972)|김종훈]]-김재걸) 타자 중 키가 제일 작다.(186cm-183cm-175cm) 실제로 '''중학생''' 시절 겨우 '''150cm'''밖에 안 되어 한때 야구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
|---|
| 46 | |
|---|
| 47 | == 프로 입단 전, 김재걸 파동 == |
|---|
| 48 | 김재걸이 단국대에 재학하고 있었던 당시 [[현대그룹]]은 프로야구단 창단을 위한 밑떡밥으로 실업야구단 [[현대 피닉스]]를 창단하며 [[문동환]], [[박재홍(야구)|박재홍]] 등 유망한 고졸, 대졸 선수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단국대 시절 국가대표를 했던 김재걸도 [[1994년]] [[11월]] 현대 피닉스와 1억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몇 달 전 열린 1995 신인지명 때 김재걸을 지명했던 삼성에서 김재걸에 대한 소유권은 자신들에게 있다며 김재걸과 계약하며 이중계약 파동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현대와 삼성은 김재걸을 두고 법정 공방까지 벌였으며, [[1995년]] [[3월]]에서야 김재걸은 삼성 선수가 맞다고 판결이 났다. |
|---|
| 49 | |
|---|
| 50 | 여담으로 당시 여론은 현대 피닉스 편이었다. 아무래도 김재걸이 현대 피닉스와 먼저 계약을 했기 때문. 또한 이전에 비슷한 이중계약 파동 때는 프로야구 쪽이 힘의 논리를 앞세워 이겼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 |
|---|
| 51 | |
|---|
| 52 | == 선수 생활 == |
|---|
| 53 | [[파일:/image/003/2007/08/21/NISI20070821_0005015576_web.jpg]] |
|---|
| 54 | |
|---|
| 55 | 입단 당시에는 계약금 2억 1천만원이라는, 당시 [[심재학]]과 함께 신인 역대 최다 계약금을 받아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김재걸의 실력은 팬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사실 김재걸의 계약금은 현대 피닉스의 아마선수 수집으로 인해 폭등하고 있던 당시 계약금 실정에 현대와 삼성의 자존심 싸움에서 더욱 부풀려 진 것이었다. |
|---|
| 56 | |
|---|
| 57 | 활동적인 풋워크를 바탕으로 한 괜찮은 수비를 가지고 있었고 발도 빨랐으나, 결정적으로 타격이 사망. 1995~1996년의 주전 시절(95년 유격수, 96년 2루수)에도 꾸준히 2할대 초반의 타격을 보이며 스스로 주어진 기회를 걷어차고 말았다. 심지어 1996년 5월엔 비록 어깨가 강한 선수인걸 감안하더라도 '''땜빵''' [[포수]]로 나온 [[이종범]]에게 도루저지를 당하는 굴욕도 겪는다. |
|---|
| 58 | |
|---|
| 59 | 1997년 팀에 새롭게 부임한 [[백인천]]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1루수]] [[이승엽]], [[3루수]] [[김한수]], [[2루수]] [[정경배]], [[유격수]] [[김태균(1971)|김태균]]을 주전으로 낙점하면서 파격적인 내야 리빌딩에 나섰다.[* 사실 KBO에서 단기간에 이런 식의 리빌딩을 성공시킨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김재걸이 이들에게 밀린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타격이였다. 이승엽은 이제 막 시즌을 시작하는 처지였지만 백인천 감독이 열심히 밀어주었고(그리고 1997시즌에 이승엽은 국내 '''첫''' 홈런왕을 차지했다.), 김태균은 정확도만 놓고 보면 김재걸과 큰 차이는 없지만, 홈런을 16개나 친 시즌이 정도로 한 방이 있는 유격수였다. 그렇다고 외야로 전향하자니, [[양준혁]], [[최익성]]에 [[신동주(야구)|신동주]]까지... ~~이 때 삼성 타선은 참 화려했다. [[천보성|부정배트 사건]]도 내보고~~ |
|---|
| 60 | |
|---|
| 61 | 결국 자신보다 나은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선수들에 밀려 벤치워머(benchwarmer)로 강등되었으며, 군 복무를 마친 200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수비]] 요원으로 뛰게 된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이 때 프로 주전선수라는 자만심에 휩싸여 연습을 게을리 했다고. 이후 백업요원으로 떨어지자 자신의 자만을 깨닫고 죽어라 수비연습을 하면서 스스로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
|---|
| 62 | |
|---|
| 63 | 그리고 그 노력은 나이 막 서른이 지났을 무렵부터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한 모든 [[한국시리즈]]'''에서 당당한 주연으로 떠오르는 것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
|---|
| 64 | |
|---|
| 65 | 팀이 처음 우승한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그는 6차전 9대 6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9번 타자로 나와, 당시 혼신의 힘을 다해 [[마무리 투수]]로 뛰던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에게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큼지막한 중월 펜스 직격 2루타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1번 [[강동우]] 삼진, 2번 [[틸슨 브리또]] 볼넷, 3번 [[이승엽]]의 동점홈런,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4번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은 김재걸의 방망이로부터 시작되었다. |
|---|
| 66 | |
|---|
| 67 | 그리고 2003년과 2004년은 언제나 그렇듯이 별 특징 없는 중고참 후보 선수로 시즌을 보냈다. 특히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석패한 삼성이 거액을 들여 [[심정수]]와 [[박진만]]을 [[KBO FA 제도|FA]]로 영입하면서, 18인 보호선수명단[* 다른 팀의 FA를 영입하는 팀은 기본적으로 FA의 전 소속팀에 전해 연봉 300%에 해당하는 보상금에다가, 150%의 추가 보상금 혹은 보상선수 한 명으로 프리미엄을 얹어 줘야 했다. 여기에서 FA 영입팀은 상대팀이 절대 데려갈 수 없는 핵심선수 18명을 보호선수로 지정할 수 있다.]에 변변찮은 공격력을 가진 김재걸과 김종훈은 집어넣고 150킬로대의 빠른 공을 던지던 지역 유망주 투수 [[이정호(1982)|이정호]]를 제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팬들은 '''왜 김재걸은 보호하면서 이정호는 가게 내버려 두었냐'''며 불만을 토했다.[* 그 이정호는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 1군에서 활약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또 [[박진만]]은 삼성으로 넘어오면서 김재걸이 달고 있었던 자신의 기존 등번호 7번을 요구했고, 김재걸은 박진만이 후배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재걸은 1995년 단국대 졸업, 박진만은 1996년 인천고 졸업(1년 유급). 참고로 김재걸과 함께 단국대 타선을 이끌던 선수가 바로 [[이병규]]와 [[강동우]]였다.] 등번호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김재걸의 팀 내 입지가 어느 수준이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
|---|
| 68 | |
|---|
| 69 | 그러나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2005년은 김재걸의 선수생활에서 '''가장 화려한 한 해가 되었다.''' |
|---|
| 70 | |
|---|
| 71 | 시즌 초 [[박진만]]의 부상으로 유격수에 공백이 생기자 [[선동열]] 감독은 아쉬운 대로 김재걸을 선발 출장시켰다. 초반에는 김재걸 선발출장을 지지하는 팬들이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2004년에 쏠쏠한 유격수 수비실력을 보이면서 타격에서도 잠재력을 과시한 [[조동찬]]이 3루수에서 유격수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김재걸은 이런 반대여론을 수비도 아니고 '''미칠 듯한 공격력'''으로 메꿔 버린다. 이 놀라운 활약에 사람들은 김재걸을 [[배용준|욘사마]]와 [[양준혁|양신]]에 빗대어 '''걸사마, 걸신'''이라 부르며 열광하기 시작했고, 그는 박진만이 복귀한 중반 이후에도 백업 선수로 종종 출장하며 팀의 승리에 여러 차례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한 예로 1위 삼성과 2위 SK의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라 불렸던 그 해 8월말 [[인천 SK행복드림구장|문학 야구장]] 3연전에서, 김재걸은 팀이 1무 1패로 몰려 있던 마지막 경기에 선발 출장해 솔로홈런을 날렸다. 그리고 그 경기는 삼성이 '''1대 0'''으로 승리했다. |
|---|
| 72 | |
|---|
| 73 | 그리고 맞이한 2005년 한국시리즈는 말 그대로 김재걸을 '''[[KBO 한국시리즈]]의 사나이'''로 만드는 경기가 되었다. 이번에도 출발은 백업요원이었으나, 1차전에서 [[박종호(1973)|박종호]]가 [[번트]]를 대다가 공에 손가락을 맞아 시리즈 아웃되면서 바로 그 자리에 들어간 김재걸은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12타수 6안타 5볼넷 4득점 2타점'''이라는, 말 그대로 MVP급 활약을 선보였다. 그리고 삼성은 이런 김재걸의 활약에 힘입어 [[두산 베어스]]를 스윕하고 세번째 우승컵을 가져갔다. 시리즈 MVP는 철벽투구를 선보인 [[오승환]]이 가져갔지만, 팬들이 뽑은 한국시리즈 최고 선수의 영예(구단 별도시상)는 김재걸에게 돌아갔다. |
|---|
| 74 | |
|---|
| 75 |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에는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로 발탁, [[김민재(내야수)|김민재]]와 함께 주전 키스톤 콤비였던 [[박진만]], [[김종국(야구선수)|김종국]]의 백업을 맡으며 팀의 4강행에 기여했다. 또한 2006년 시즌에는 전체적으로 예의 그 물방망이로 돌아갔으나, 이 해에도 역시 '''한국시리즈'''에서 천금같은 동점타를 날리는 등 팀의 4번째 우승에 기여한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
|---|
| 76 | |
|---|
| 77 | 2007년에는 [[3루수]]의 구멍을 막기 위해 또 다른 노장 [[김한수]]와 함께 고군분투했으며, [[신명철]]이 들어오고 '''[[박석민]]'''이라는 걸출한 신예가 복귀한 이후에는 조용히 은퇴를 준비하게 된다. 참고로 당 시즌 5월 8일엔 1이닝에 실책 4개를 범하여 한 이닝 최다 실책 공동 1위 자리에 올라가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기게 된다. 2009년에는 선수로 등록했지만 사실상 플레잉코치 역임을 했으며,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을 때는 2군에서 뛰면서도 후배들의 훈련을 도우며 코치 수업을 쌓기도 했다. |
|---|
| 78 | |
|---|
| 79 | [[2010년]] [[4월 10일]] 은퇴식을 치렀다. 삼성 구단의 5번째 은퇴식이었다. 그런데, |
|---|
| 80 | |
|---|
| 81 | [[파일:attachment/sslinos.jpg]] |
|---|
| 82 | 아니, 은퇴식을 한 건 좋은데, '''Linos'''가 뭐냐? ~~[[NC 다이노스|Dinos]]~~ ~~[[EDA 라이노스]]~~ 삼성 [[프런트]]는 이 건 때문에 영어도 못 하는 프런트라고 빈축을 샀다. |
|---|
| 83 | |
|---|
| 84 | 실력으로 경기를 압도하는 스타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그의 발견은 백업 요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 야구의 체계적인 면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KBO에서 내야백업 유틸리티로 가장 유명한 게 꾸준함은 [[LG 트윈스]]의 [[이종열]], 임팩트는 한국시리즈의 사나이 김재걸일 것이다. |
|---|
| 85 | |
|---|
| 86 | 연도별 성적을 보면 전혀 은퇴식을 치러줄 만한 성적을 기록하진 않았지만(...) 삼성의 한국시리즈 [[콩라인]] 탈출의 밑바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해가 안 가면 위로 올라가서 2002년 코시 부분을 읽어보라.] 삼성의 [[2005년 한국시리즈|V3]], [[2006년 한국시리즈|V4]]를 견인한 주역이기도 해서... |
|---|
| 87 | |
|---|
| 88 | == 수비 스타일 == |
|---|
| 89 | [[https://youtu.be/kJjGW71U6wU|김재걸 삼성시절 커리어 수비 하이라이트]] |
|---|
| 90 | |
|---|
| 91 | == 은퇴 후 == |
|---|
| 92 | 은퇴 이후 2011 시즌부터는 삼성 라이온즈의 주루코치를 맡고 있으며, 3루쪽 코치석에서 볼 수 있다. |
|---|
| 93 | |
|---|
| 94 | 하지만 주루코치로서는 평가가 영 좋지 못한데, [[유지현]] 등 준족류 출신들 주루코치가 으레 그렇듯이 선수들 주력을 철저히 자기 눈높이에 맞추는 경향이 있다. 뭐 [[배영섭]]이라든가 [[김상수(타자)|김상수]]같은 선수들이야 주력도 되고 센스도 뛰어난 선수들이니 막 돌려도 보통 문제없이 사는 편이지만, '''[[진갑용]]'''처럼 똥차 수준의 선수들한테 그렇게 돌리면 뭐 어쩌라고(...). |
|---|
| 95 | |
|---|
| 96 | 2013년 들어서는 [[김태한]], [[김한수]]와 더불어 삼성 라이온즈를 망치는 3김 코치라고 까이고 있다. ~~근데 [[김한수]]는 감독이 됐다...~~ |
|---|
| 97 | |
|---|
| 98 | 앞에서 말한 문제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선수들이 간혹 김재걸의 사인을 무시하고 주루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보인다. 예를 들면 [[201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강명구]]가 했던 주루플레이 오버런이라든가 ~~근데 이게 [[SK 와이번스|SK]]의 허를 찌르며 성공~~ [[2013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박한이]]가 사인 없이 단독으로 성공시킨 3루 도루라던가... 심지어 [[2014년]]엔 어느 [[야마이코 나바로|용병]]에게까지 무시당했다(...). 그리고 2015년에 또 한 번(...). |
|---|
| 99 | |
|---|
| 100 | 게다가 [[김평호|삼성의 도루왕 역사를 새로 쓰신 분]] 때문에 존재감이 엄청 없어졌다(...). 도루 관련 공이든 과든 모두 저 분에게 돌아가다 보니, 뉴비팬들에겐 아예 인지도가 없거나 간간히 사고치는 3루 코치 정도 이미지가 되셨다(...). |
|---|
| 101 | |
|---|
| 102 | [[파일:1524581557-1.jpg]] |
|---|
| 103 | [[2017년]] [[5월 21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김태균]] 선수를 오른발로 폭행한 혐의로 인해 5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300만원 징계를 받게 됐다. 역시 과격한 행동을 벌인 [[강봉규]] 코치와 동일한 징계다. |
|---|
| 104 | |
|---|
| 105 | 2018 시즌 이후 삼성에서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기사가 났다. 10월 22일 LG 트윈스 코치로 간다고 기사가 떴다. 선수로는 [[장원삼]]이랑도 같이간다. |
|---|
| 106 | |
|---|
| 107 | 그래도 LG 트윈스로 건너와서는 예전의 문제점들은 많이 줄은 것으로 보인다. 예전처럼 막 돌려대지 않고 주루 사인으로 정주현 등 발이 빠른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여 타이밍에 맞게 도루시키면서[* 3루 도루도 많이 시킨다. 성공률이 꽤 높은 편.] 득점과도 꽤 연결시켜주는 편이라 나름 좋게 평가 받는다. 가끔 판단 미스로 돌려버리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는 평. 하지만 2020시즌 용병 타자 라모스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홈으로 질주하는 덩치 큰 라모스를 믿지 못하고 막아세웠으나 라모스는 김재걸을 무시하고 지나쳐 --나바로?-- 두 번 다 득점에 성공(...). 근데 이건 라모스가 순간적으로 의욕이 앞서서 그랬지 막길 잘한건 맞다. 아웃될 확률이 더 컸고 라모스가 워낙 똥차라... |
|---|
| 108 | |
|---|
| 109 | 그러나 2020년 들어 LG는 팀 전체 주루사 1위를 기록하며 김재걸의 자질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아마 똥차갑 이성우의 홈에서의 아웃이나 손호영 주루사[* 손호영이 2루에 도착하고 3루로 뛰어가는 도중에 막아세웠다.(...) 명백한 김재걸 코치의 실수.]에 관한 것때문에 2배 이상으로 까이고 있는 듯하다.[* 성적이 불안불안할 때 특히 더 까였다. 심지어는 김재걸과 관련이 없을때도 까였다.(...)] |
|---|
| 110 | |
|---|
| 111 | 근데, 사실 잘 살펴보면 시즌 중반에 판단미스로 가끔 풍차돌리기를 시전했다 뿐 생각보다 김재걸의 실책 빈도가 많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건 주루코치들 대부분 약간씩 실수한다. 주루코치가 로봇이 아닌 이상 어떻게 완벽하겠는가? 또, 삼성 코치 초기 시절때랑 비교해보면 타이밍도 훨씬 잘 아는데 팀 성적이 위태위태할 때 괜히 과하게 까이는거 아니냐는 반론도 나왔다. 그리고 상술된 팀 주루사 지표도 꼭 3루쪽에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말이다. 분명 김재걸 본인의 코칭이 나쁘지 않은 상태인건 확실하다. |
|---|
| 112 | |
|---|
| 113 | 류중일 감독이 사퇴한 이후 2021 시즌부터 다시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한다. |
|---|
| 114 | |
|---|
| 115 | == 연도별 성적 == |
|---|
| 116 | ||<-15><bgcolor=#000000> {{{#ffffff 역대 기록}}} || |
|---|
| 117 | ||<rowbgcolor=#074ca1>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
|---|
| 118 | || 1995 ||<|15> [[삼성 라이온즈]] || 109 || 281 || .249 || 70 || 11 || '''5'''[br](5위) || 3 || 32 || 32 || 10 || 22 || .356 || .302 || |
|---|
| 119 | || 1996 || 115 || 320 || .228 || 73 || 12 || 2 || 2 || 28 || 31 || '''40'''[br](3위) || 36 || .297 || .303 || |
|---|
| 120 | || 1997 || 30 || 17 || .176 || 3 || 1 || 0 || 1 || 2 || 7 || 1 || 1 || .412 || .211 || |
|---|
| 121 | || 1998 || 72 || 100 || .250 || 25 || 2 || 0 || 0 || 5 || 8 || 9 || 8 || .270 || .306 || |
|---|
| 122 | || 1999 ||<-10><|2> 군복무(공익근무) || |
|---|
| 123 | || 2000 || |
|---|
| 124 | || 2001 || 70 || 138 || .261 || 36 || 5 || 1 || 1 || 9 || 18 || 6 || 11 || .333 || .313 || |
|---|
| 125 | || 2002 || 83 || 92 || .207 || 19 || 1 || 0 || 2 || 10 || 17 || 5 || 8 || .283 || .265 || |
|---|
| 126 | || 2003 || 85 || 161 || .199 || 32 || 7 || 1 || 0 || 10 || 23 || 2 || 12 || .255 || .253 || |
|---|
| 127 | || 2004 || 64 || 64 || .188 || 12 || 2 || 0 || 0 || 3 || 12 || 2 || 5 || .219 || .246 || |
|---|
| 128 | || 2005 || 103 || 231 || .247 || 57 || 7 || 0 || 1 || 23 || 22 || 8 || 22 || .290 || .311 || |
|---|
| 129 | || 2006 || 115 || 171 || .211 || 36 || 6 || 1 || 0 || 11 || 35 || 9 || 13 || .257 || .266 || |
|---|
| 130 | || 2007 || 116 || 314 || .232 || 73 || 12 || 0 || 2 || 22 || 40 || 17 || 40 || .290 || .317 || |
|---|
| 131 | || 2008 || 99 || 187 || .230 || 43 || 4 || 3 || 1 || 11 || 19 || 6 || 26 || .299 || .322 || |
|---|
| 132 | || 2009 || 64 || 52 || .212 || 11 || 2 || 0 || 1 || 4 || 7 || 4 || 11 || .308 || .349 || |
|---|
| 133 | ||<-2><rowcolor=#373a3c><rowbgcolor=#ffff99> '''[[KBO]] 통산'''[br](13시즌) || 1125 || 2128 || .230 || 490 || 72 || 13 || 14 || 170 || 271 || 119 || 215 || .296 || .299 || |
|---|
| 134 | |
|---|
| 135 | [각주] |
|---|
| 136 | |
|---|
| 137 |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ㄱ]][[분류:구로구 출신 인물]][[분류:1972년 출생]][[분류:1995년 데뷔]][[분류:2009년 은퇴]][[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원클럽맨]][[분류:삼성 라이온즈 은퇴/이적]][[분류:덕수고등학교 출신]][[분류:단국대학교 출신]] |
|---|